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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흥미를 돋우는 캐릭터, 난해함 속 묘미, 개인적 해석

by 둥근아치 202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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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선언을 번복하고 만들어낸 영화다. 2013년 "바람이 분다" 이후 선언한 은퇴를 번복한 것이다. 그럼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일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니시오카 준이치 부사장에 따르면 다행히 하야오 감독은 현재도 회사에 매일 출근해 다음 애니메이션 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호재다. 나이가 80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모습이 멋있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요시노 겐자부로의 책 "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제목과 주제를 가져왔다고 한다. 근데 딱 제목이랑 주제 정도를 가져온 것이고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오히려 다른 문학작품에 영감을 많이 받은 모습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사람들의 입소문과 영화의 재미에 뭔가를 걸어보고 싶다"며 전형적으로 진행하는 광고를 축소하고 sns를 통한 홍보를 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하야오 감독의 그런 바람에 맞춰 영화에 대한 내 생각들을 풀어보며 하나의 입소문이 되어볼까 한다.

 

 

흥미로운 캐릭터 디자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너무 난해하고 뭔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다는 비평을 한다. 나도 보면서 생긴 궁금증들이 많은데 영화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평소에 열린 결말 등을 그닥 좋아하지 않음에도, 이 부족한 설명으로 부정적 감정이 들기보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라는 탐구의 영역이 발동됐다. 내가 딱히 지브리의 열렬한 팬인 것도 아니다. 원령공주는 개인적으로 ost를 듣고 사랑에 빠져서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지만 너무 지루해서 보다가 그만두고 말아버린 전적도 있다. 그럼 도대체 왜 나는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보게 되었나? 내 생각에는 시각적인 부분들이 나의 취향을 저격한 부분이 큰 것 같다. 캐릭터 디자인이 너무 잘 뽑혔다. 우선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들 마냥 히사코와 나츠코, 마히토를 차례로 케어해왔던 할머니 디자인이 굉장히 귀여웠고, 마히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탑'으로 인도한 왜가리의 초반 등장도 엉덩이 움직임과 같은 포인트들이 너무 귀여웠다. 탑에 들어가서는 꿈의 세계로 들어간 것 마냥 신기한 생명체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늘로 승천하는 와라와라, 무섭고도 귀여우면서 웃긴 앵무새 종족, 산더미 같이 쏟아져오는 왜가리들의 움직임 표현 등 볼 만한 것들이 많다. 해석으로 들어가면 마냥 귀여워하면서 볼 건 아닐 수도 있게 되지만, 그래도 일단 귀엽다. 지브리 하면 그림체도 그림체지만 특유의 움직임 표현이 개인적으로 취향인데 이번 영화에서 이러한 묘미들이 많이 보인다. 따라서 내용이 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시각적인 부분을 충족해줘서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난해한 것이 묘미가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가 난해함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살짝 했다. 세상살이가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 전개처럼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에 모순적이고 어이없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도, '원래 세상사가 복잡하고 서로 이해관계가 다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며 약간은 초연하게 대처하다보면 결국 내 편이 생기고 친구가 생긴다는 그런 주제를 담지 않았나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마히토에게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도대체 마히토는 초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탑'의 세계로 넘어왔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고 자기확신이 있는가 궁금했다. 왜가리가 미션 수행을 도와준다고 해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내 힘으로 찾아볼게" 이렇게 말하는 게 신기했다. 아니 탑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이가 없기도 했다. 꼭 이 부분이 아니더라도 마히토는 '탑'의 세계에서 한 치의 흔들림이나 혼란함 없이 뭔가 신기가 있는 사람처럼 자기확신이 대단했다. 이런 마히토와 난해한 이야기 전개를 보면서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하다가 거듭된 생각 끝에 저런 주제의식을 도출하게 된 것이다. 아, 아무리 혼란스럽고 슬퍼도 일단 자기 생각대로, 본인만의 방식으로 할 일을 하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이 꽤 괜찮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겠다 싶었다. 

 

 

 

개인적인 해석

 영화를 다 본 후, 생각을 조금 정리 해보고 어려워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찾아봤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워낙 거장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막연히 그가 순수창작을 했을 거라고 추측했는데 생각보다 책이나 유명한 화가의 말과 같은 여러 문학작품에 영감을 받아 만든 부분들이 많았다. 이렇게 영감 받은 것들을 토대로 작품을 해석한 내용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는 상징들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고, 완벽하진 않아도 보다 작품을 깊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마히토의 악의에 대해 해석하는 부분이 상당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잘못 받아들인 걸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뉘앙스가 마히토의 악의가 잘못된 것이고, 미성숙했기 때문에 가진 것이며, 고쳐야 할 것으로 해석한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내 생각에 마히토의 악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물론 모두의 입장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의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서 아빠가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임신까지 해버린다는 것은 자식에게 있어서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다. 나츠코가 탑에 들어간 것이 마히토에게 그저 좋은 마음 뿐인데도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악의를 가진 마히토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본인의 생각이 짧았기 때문에 마히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을 깨닫고 탑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마히토를 위했다면 그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 이모의 자리에서 챙겨주는 게 맞지 진짜로 엄마의 자리로 들어가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이 마히토에게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에 마히토를 등한시하고 본인들 위주로 생각하느라 상처를 준 것은 맞다. 마히토가 그 정도 악의를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영화에서도 마히토의 악의를 나쁜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본다. 영화에서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고히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히토는 탑을 통해서 자신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는 자기객관화를 하게 되고, 히사코와의 만남이 있었으니 나츠코를 어느정도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을 한 거라고 해석했다. 

 

 

 

마무리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ost다. 비록 영화를 보는 중에는 나오지 않지만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요네즈 켄시의 '지구본'은 여운을 즐기기 충분했다. 켄시의 기가 막히는 목소리와 작품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가 보이는 작사 작곡이 심금을 울린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계속 이 노래를 들으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갈리는 작품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알차게 잘 봤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살포시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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