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밍헬라 감독이 제작한 "리플리"는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을 거짓말로 채우려다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져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심리 스릴러 영화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라는 1955년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남을 흉내 내는 모방에 재능이 있고 사치와 기득권 층의 부유한 삶에 대한 깊은 열망을 가진 젊은 남자인 톰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을 알았음에도 '리플리'라는 단어의 어원이 소설이라는 것은 몰랐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됐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리플리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울 것으로 기대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사실 내용 자체보다는 주드로와 기네스 펠트로의 미모와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한몫한 것 같다.
'거짓말'을 소재로
"리플리"가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관객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흥미로운 소재를 잘 다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거짓말들을 계속해서 해대는 주인공으로인해 관객들이 긴장하게 한다.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에 사는 부유한 바람둥이 디키 그린리프를 미국으로 보내달라는 부탁으로 유럽으로 보내진 톰 리플리를 따라 전개된다. 하지만 톰은 디키의 흥청망청 즐기는 삶의 방식에 매료되고 스스로 디키가 되는 것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된다.
톰의 속임수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위험해지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톰이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과 조작, 그리고 궁극적으로 살인의 연속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심리적 혼돈에 빠져든다. 이러한 심리적 복잡성은 톰을 흥미롭게 보는 인물로 만드는데, 관객들은 톰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공감하기도 한다. 영화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거침없이 거짓말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대한 이야기는 매혹적이면서도 착잡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195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배경을 이야기에 더한다. 그림 같은 풍경, 화려한 빌라, 그리고 활기찬 문화적 장면은 영화의 매력을 높여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톰이 디키와 계속 붙어있고 싶어 하는 것을 납득하게 해 준다. 이처럼 매혹적인 줄거리와 아름다운 풍경의 조합은 영화 "리플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도록 해준다.
배우들의 미모와 연기, 동성애 요소?
영화 "리플리"의 성공은 특히 맷 데이먼, 주드로, 그리고 기네스 팰트로의 명연기로 인해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톰 리플리에 대한 맷 데이먼의 묘사는 그 등장인물의 다면적인 본성을 포착하면서, 소름끼치는 동시에 몇몇 사람들에게는 동정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멀리하기 때문에 동정심을 갖기는 어려웠다. 프린스턴 대학생인척 한 것 까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라 보는데 그 이후로의 거짓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뒤를 생각하지 않는 대담한 성격이 흥미를 끌긴 했다. 맷 데이먼이 '디키'의 삶을 살다가도 '톰'을 아는 사람을 만나버려 그의 역할을 해야할 때, 갑자기 돌변해 어리숙하고 무해해 보이는 연기를 하는 모습은 정말 역겹고도 소름돋았다. 그만큼 연기를 뛰어나게 했다는 소리다.
디키 그린리프 역의 주드 로의 연기도 마찬가지로 매력적이다. 주드로는 디키의 매력과 카리스마, 무모함을 구현하여 톰이 왜 그에게 홀딱 빠져들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정말 전형적인 잘난 상류층 자제의 모습을 보여줬다. 기네스 팰트로는 디키의 여자친구인 마지 셔우드로서 이야기에 감정적인 무게를 더하는 미묘한 연기를 한다. 그녀의 의심과 톰의 진짜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은 영화에 긴장감을 주고, 결국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원통해하는 그녀의 연기는 관객들이 가슴 아플 수 있게 한다. 그린리프 씨는 톰을 믿었지만 사실 디키를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오랫동안 붙어있던 마지와 프레디였던 부분이 살짝 감명 깊었다.
동성애 요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해서 깜짝 놀랐다. 설마설마했는데 기차씬이 이상함을 감지하게 했고 보트씬에서 정점을 찍었다. 톰이 초반에 매러디스에게 거짓말을 치는 부분에서 플러팅 하는 것처럼 느꼈기에 톰의 하인처럼 구는 모습이 그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정말 끈질기게 디키가 눈치를 줬는데도 붙어있으려고 했던 걸 보면 정말 톰을 좋아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어디서 언뜻 본 결과, 동성애적 요소가 없다고 관련 인물이 말했다는 얘기도 있고 돈이 너무너무 좋아서 거머리처럼 굴었던 것일 수도 있어서 그냥 각자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사랑고백하면서 죽여버리는 것 자체가 정상인은 아니긴 하다.
영상미 끌어오리는 촬영 기법
"리플리"는 영화의 주제와 감정적인 영향을 강화하는 촬영 기법으로도 유명하다. 촬영 감독 존 실은 이탈리아 배경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촬영해 이야기의 어둡고 뒤틀린 본질과 병치시킨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톰의 어두운 내적 갈등을 함께 담아내는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이 이야기의 어두운 요소들에 의해 불안해지게 만든다.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빛과 그림자의 사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독은 특히 톰의 이중성이 노출될 위험이 있는 장면에서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고대비 조명을 사용한다. 촬영술은 톰이 취약하고 악의적인 순간에 그를 보여줌으로써 톰 캐릭터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적 접근은 관객과 영화의 상호작용과 심리적 고조를 높인다.
게다가, 시대적인 디테일에 대한 영화의 세심함은 관객들을 1950년대 배경에 몰입하게 한다. 의상 디자인, 소품 디자인, 그리고 실제 장소의 촬영은 영화의 미학적 진정성에 기여한다. 시각적 스토리텔링은 서사를 보완하며, "리플리"를 매력적인 심리 스릴러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놀라운 영화 작품으로 만든다. 거짓말이라는 주제는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당시 경찰들의 수사력에 대한 시대적인 한계도 그렇고 스릴러로써는 약간 김이 빠지는 면이 있는데 확실히 미적 요소들로 그러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을 느꼈다.
마무리
마지막에 또 한 번 살인을 저지르고 앉아있는 리플리를 촬영하는 기법이 기억에 남는다. 여러 각도에서 리플리를 보여주는데 배 안이라 흔들리는 것을 담아낸 촬영기법과 마치 공간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색다르게 와닿았다. 정말 끝까지 긴장감 있는 영화였다. 매러디스의 표정과 매러디스의 일행들이 몸짓이 톰이 결국 들켜버리는 게 아닌가 상당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매러디스가 일부러 톰을 붙잡아두려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에 매러디스에게 혼자냐고 묻는 톰도 참 소름 끼친다. 톰은 이제 톰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행만 없었다면 피터와 매러디스 중 매러디스를 제거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톰이 피터와 배에서 즐기다 지금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것도 정말 소시오패스 같다. 유독 피터 앞에서 쓸데없는 의심살 말들을 많이 한다. 어쨌든 그렇게 바보 같은 톰이기에 별로 즐기지도 못하고 금방 잡히게 된 것 같다.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서 잡혔을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