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개봉한 올리버 스톤의 "스노든"은 미국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거대한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전 NSA 계약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하여 담아낸 영화다. 이 영화는 스노든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고 도덕적 딜레마와 직면하는 과정을 담아낸 현대 드라마 및 스릴러 장르의 혼합이라고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의 흥미진진한 서사뿐만 아니라 점점 더 정보가 인터넷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는 현대사회 속에서 정부의 안보와 개인의 자유 중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시의적절한 주제로 인해 영화에 더 깊이 매료되게 된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은 우리를 오싹하고 소름돋게 만든다.
현실 속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스노든"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몰입감을 높혀 긴장감있는 서사를 탁월하게 만들었다. 올리버 스톤의 감독과 키어런 피츠제럴드의 각본은 스노든의 실제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변화시킨다. 영화는 비밀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스노든은 국가에 충성하는 헌신적인 애국자였음을 묘사하여 NSA의 감시 활동을 발견하게 된 후 그의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한다. 영화의 진행 속도 또한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되었으며, 점차 드러나는 진실은 긴박감과 위험을 더한다.
또한, 스노든이 홍콩에서 기자들과 나눈 인터뷰와 NSA에서 보낸 회상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영화의 구조는 효과적으로 몰입감을 자아낸다. 이렇게 영화의 구성을 짜냄으로써 우리는 스노든의 이야기를 좀 더 차근차근히, 중요한 부분은 더 집중하면서 볼 수 있다. 이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영화와 더 깊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스노든이 직면하는 끊임없는 충격적 진실의 발견과 도덕적 딜레마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곤경에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가 감시 프로그램들의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일반 청중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 설명한다는 점도 관객들이 더욱 깊게 스노든이 드러내는 정보의 중대성을 이해하면서 계속 영화와 상호작용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노든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스노든이라면 스노든처럼 내부폭로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들이 개인의 자유가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침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폭로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국가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개인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이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여러 조치를 통해 남용되지 않고 철저하게 국가 안보를 위해서만 쓰인다는 것이 보장되는 걸 확인했으면 나 또한 국가의 안보를 위해 폭로하지 않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따르면 스노든은 NSA가 미국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큰 러시아보다 미국의 국민들을 약 2배가량 더 감시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또, 국가 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만한 인물인 스노든의 여자친구의 sns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볼 수도 있었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권위를 가진 인물의 약점을 잡기위해 쓰이기도 했다. 이것들은 전혀 국가의 안보와 관련이 없다. 스노든은 프로그램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기에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는 사실을 묵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쓰이진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국가 안보를 지키는 데에도 중요하게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가 선을 넘은 것을 확인한 이상 침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부폭로로 인해 개인이 위험해진다면?
개인의 자유를 얻는 대신 국가가 위협을 받아서 개인 또한 위험해지면 그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물어볼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는 대신 죽을 위험의 가능성으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주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남의 감시 속에서 제약적으로 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의 정보 수집을 거부하고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내가 얼마나 세상이 위험한 줄 몰라서 하는 얄팍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생각 또한 존중 받아야 된다고 본다.
또, 사실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고 아직 받지도 않은 위협을 걱정하면서 남의 감시 속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노예근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노예근성은 위험하다. 순종적인 노예근성이 당연한 게 사회주류의 생각이 된다면 분명 이 생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자들이 국민의 안전을 위하는 것이라며 여러 제약을 걸고 자신의 입맛대로, 자신이 짠 틀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독재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프랑스혁명을 생각해보자. 자유를 얻기 위해 아주 오랜 기간 그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싸웠다. 한 번 빼앗긴 자유는 다시 되찾기 힘들다는 방증이다. 자유를 빼앗기기 전에 대중들에게 사생활 침해 사실을 알리고 이를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
영화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저 사례가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았을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현대사회의 중대한 문제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기에 다들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한편으로는 조금 무기력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금도 일반 개인들의 정보들이 알게 모르게 대기업들과 정부들 손아귀에 넘어가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노든이 폭로를 해서 국민들이 알기는 알았지만 결국 미국 정부는 끝까지 스노든을 배신자 취급하고 있고 민간 정보 수집에 대해 인정하지 않아서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란 나라가 힘이 워낙 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스노든이 정말 대단히 용기있는 인물로 느껴진다.